눈이 오면요. 딱히 약속이 없어도 밖에 나가고 싶어져요. 뭐랄까… 집에 있기엔 조금 아깝고, 그렇다고 어딜 가야 할지는 모르겠고. 그래서 저는 보통 카페를 떠올려요. 그중에서도 브런치 카페요.
왜 하필 브런치인지는 잘 모르겠어요. 아침도 아니고 점심도 아닌 그 애매한 시간대. 따뜻한 음식이랑 커피 한 잔 있으면 그날은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도 괜찮을 것 같거든요.
아래에 적는 곳들은 “여기가 최고다” 이런 느낌보다는 눈 오는 날에 생각나는 곳들이에요. 조용했고, 오래 앉아 있었고, 돌아오는 길에 괜히 기분이 좀 괜찮아졌던 곳들.

연남동, 하이브레드
여기는 처음부터 목적지로 간 건 아니었어요. 연남동 걷다가, 추워서 그냥 들어갔던 곳에 가까워요. 근데 들어가자마자 아, 오늘은 여기서 좀 있어도 되겠다 싶었어요.
창이 커서 눈 오는 게 잘 보여요. 사람들도 조용한 편이고요. 누가 큰 소리로 웃거나 떠들지 않아서 좋았어요. 그냥 각자 자기 테이블에 앉아 있는 느낌.
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엄청 맛있다기보단, 딱 그날이랑 잘 맞았어요. 기름지지 않고, 과하지 않고. 커피 대신 따뜻한 차를 시켰고 생각보다 오래 앉아 있었던 것 같아요. 아무것도 안 하고요. 그게 가능했던 카페였어요.
성수동, 툴루즈
툴루즈는 성수에 있는데 성수치고는 조금 느린 공간이에요. 밖은 공장 느낌인데 안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좀 달라져요.
눈 오는 날 갔을 때 기억이 나요.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들 말이 없더라고요. 이상하게 그날은 다들 조용했어요. 우연일 수도 있는데, 그 분위기가 좋았어요.
브런치는 꽤 제대로 나와요. 에그베네딕트 같은 메뉴인데 너무 꾸민 느낌은 아니고, 그냥 안정적인 맛. 라떼도 묵직해서 단맛 많은 브런치랑 잘 어울렸고요.
여기는 뭔가 생각 정리 안 될 때 가기 좋아요. 정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라서요.
한남동, 라플랑트
여긴 위치부터가 좀 애매해요. 한남동 언덕 위쪽이라 걸어 올라가야 하고 괜히 귀찮을 수도 있어요.
근데 눈 오는 날엔 그 언덕이 이상하게 싫지 않아요. 조금 느리게 걷게 되고, 주변도 조용하고.
라플랑트는 외관부터 눈이랑 잘 어울려요. 유럽 느낌이라기보단 그냥, 겨울 배경 같은 느낌.
수플레 팬케이크를 먹었는데 말랑하고 따뜻했어요. 그냥 그거 하나로 충분했어요. 말도 많이 안 하게 되고, 휴대폰도 덜 보게 되고.
여기는 혼자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. 오히려 혼자가 더 자연스러워요.
북촌, 사소한식탁
이곳은 크지 않아요. 진짜 작아요. 테이블도 많지 않고,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하는 분위기예요.
한옥 골목 안에 있어서 눈 오면 풍경이 좀 달라져요. 기와 위에 눈 쌓인 거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가라앉아요. 좋은 쪽으로요.
브런치도 화려하지 않아요. 오트밀, 토스트, 이런 메뉴들. 근데 그게 이 공간이랑 잘 맞아요. 배부르려고 먹는 게 아니라 속 편해지려고 먹는 느낌.
여긴 오래 있진 않았어요. 근데 짧게 있다 가도 기억에 남는 곳이에요.
망원동, 밀리우
망원동은 원래 시끌시끌한데 눈 오는 날엔 조금 달라요. 밀리우는 그중에서도 더 조용한 편이고요.
안에 들어가면 인테리어가 튀지 않아요. 근데 그게 좋아요. 화이트랑 우드톤만 있어서 눈 오는 날엔 더 차분해 보여요.
브런치는 간단해요. 빵이랑 수프, 샐러드 정도. 근데 이상하게 이런 날엔 이 정도가 딱이에요.
무화과 라떼를 마셨는데 막 달진 않고 묘하게 따뜻했어요. 왜 좋은지는 설명이 잘 안 되는데 그날이랑 잘 어울렸어요.
그냥, 눈 오는 날엔 이런 곳이 좋아요
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맛 얘기를 많이 안 한 것 같아요. 근데 사실, 그게 맞는 것 같아요.
눈 오는 날엔 카페가 맛집이냐 아니냐보다 그날 내가 어떻게 앉아 있었는지가 더 기억에 남아요.
창밖을 얼마나 봤는지, 얼마나 조용했는지, 집에 돌아갈 때 기분이 어땠는지.
다음에 눈이 오면 꼭 이 중 하나가 아니어도 괜찮아요. 그냥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브런치 카페.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.

